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문단 편집) === 프랑스 식민지와 [[제2차 세계 대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베트남/역사)] 19세기 이래 [[베트남]]은 [[라오스]], [[캄보디아]]와 함께 [[프랑스]]의 [[식민지]]로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또는 [[인도차이나 연방]]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식민 정책은 '문명의 전파'를 표방했기에 비교적 다른 열강의 식민지 정책에 비해 비교적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지만 [[프랑스-베트남 관계|프랑스와 베트남의 관계]]의 본질은 결국 프랑스가 베트남을 착취하는 것이며 본국에서 이탈해 식민지로 오는 관리들의 수준이란 뻔한 것이었기에 이상과 달리 실제 통치는 혹독하였다. 게다가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프랑스도 [[독립운동]] 세력들에게 군대를 앞세워 혹독하게 진압하는 바람에 반감이 더욱 쌓여만 갔다. 1930년 무장봉기는 주로 통킹지역과 안남 북부에서 전개되었다. 프랑스는 이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전투기까지 동원했다. 그 결과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진압하는 프랑스군에 의해 사망하였고 실패로 끝났다. 이후 베트남 독립운동의 주도권은 공산주의 세력으로 기울어졌는데 그 중심에는 프랑스 공산당과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배우고 온 [[호찌민]]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프랑스 본토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하자 총독부는 연합국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도리어 [[일본 제국]]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인도차이나의 운명은 [[일본 제국]]과 [[비시 프랑스]]가 손을 잡는 최악의 형태로 마무리된다. 독립 운동이 거세지면서 베트남의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는 서로 손을 잡고 '''베트남독립동맹(越南獨立同盟)''', 즉 '''[[베트민]]'''(일명 월맹)을 결성했다. 그리고 이들은 [[미군]]의 지원을 받아 일제와 싸웠다.[* 미국은 일본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지원했다.] 일제는 나치의 패전이 가까워지자 명호작전으로 인도차이나 지역의 [[비시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다이]]를 내세워 괴뢰국인 [[베트남 제국]](1945년 3월 11일 ~ 1945년 8월 23일)을 성립해 비시 정부와 [[자유 프랑스]] 모두의 뒤통수를 치며 독립을 지지하는 척하는 쇼를 벌였으나 베트남인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결국 일제의 패배와 함께 베트남 제국도 무너지며 베트남은 무주공산이 된다. 일제가 패망하자 베트민의 호찌민은 기민하게 행동하여 바로 다음날인 8월 16일 전국 국민회의를 주최해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8월 25일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9월 2일 자신이 쓴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호찌민은 자신이 세운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미국 정부가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사실 식민지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미국은 처음에는 베트남의 독립을 지지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프랑스가 다시 베트남을 식민지로 유지하려 하자 처음에 미국은 이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원했던 독립국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었다는 점이 호치민의 판단과 달랐다.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과 소련이 연합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파시스트 국가인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에 맞서기 위한 일시적인 것이었을 뿐 그들은 서로의 체제를 전혀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이 베트민을 지원한 것도 일본과 맞서 싸우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을 뿐이다. 호찌민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호찌민과 실제로 활동하기도 했던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전신인 [[OSS]] 정도였다. 결국 2차 대전이 끝나자마자 미국과 소련이 전세계를 둘로 갈라먹는 [[냉전]] 시대로 접어들었고 당장 유럽에서는 소련의 군사적 개입으로 [[동유럽]]이 줄줄이 공산화되었다. 중앙유럽까지 파고드는 공산화의 물결에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크게 위협을 느꼈고 결속력을 강화했다. 한편 서방권 국가들 중에서 프랑스의 경우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본국이 독일한테 항복해서 비시 프랑스라는 반식민지 상태에 있다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완전히 물러나고 나서야 연합국과 나란히 작전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국가의 위신은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미국과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공산권 국가들과 가장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미국은 프랑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 미국은 베트남의 독립을 지지했으나 프랑스가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두려고 하자 결국 이를 방관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일제가 패망하자 결국 바로 과거의 압제자 [[프랑스군]]이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